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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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p.40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다른 사람을 위해, 타인을 대신하여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 치면서 깊어진, 타인에 대한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p.58 이 카페에서 테이블 위에 책을 펼쳐놓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테레사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p.104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스와 사비나가 중절모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료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것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p.118 그녀는 공산주의, 파시즘, 모든 점령, 모든 침공은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악을 은폐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악의 이미지는 팔을 치켜들고 입을 맞춰 똑같은 단어를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대열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이런 것을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p.159 테레사는 파괴된 시청을 바라보았고, 이 광경은 불현듯 그녀의 어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자신의 폐허를 과시하고, 자신의 추함에 자부심을 갖고 소매를 걷어 흉하게 잘려나간 손을 보이며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보아달라고 강요하는 그 변태적 욕구.

p.180 현대식 변기가 하얀 수련꽃처럼 바닥 위로 솟아 있다. 건축가는 불가능했던 일을 실현한 셈이다. 변기 끈을 잡아당겨 물이 꾸르륵 소리를 내며 휩쓸고 내려가면, 육체는 자신의 추한 꼴을 잊게 되며, 인간은 자신의 내장이 배설한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게 된다. 하수관은 아파트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지망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세심하게 감춰져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배설물로 가득 찬 베니스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그 위에 우리 화장실, 침실, 댄스홀, 그리고 우리의 국회가 세워진 것이다.

p.285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제목만 보고 철학서인 줄 알았다는 무지력 폭발, 에 부끄러워 하며 읽었다. 번역이 좀 울퉁불퉁한 것 같지만 그 불투명한 창을 뚫고도 쏟아져 내려오는 대가의 뽀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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