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도킨스

|
- 우리는 진화를 직접 목격할 만큼 오래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살인 현장에 늦게 도착한 탐정이 이런 저런 흔적들을 보고 사건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진화가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 단서들이 압도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라고함..

- 주된 내용은 종의 기원에 나타나는 진화의 핵심 개념에 대하여 도킨스가 설명하는 기나긴 주석과 변주들.

p.28 공론을 펼치기로 작정한다면야, 어떤 사실에 대해서든 우리의 측정 도구들이나 도구를 읽는 감각기관들이 거대한 사기극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것도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가 불과 5분 전에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조작된 기억과, 구멍 난 양말과, 자를 때가 된 머리카락까지 갖춘 채로."

p.338 현실적으로는 전체 과정이 혼란스럽고 신비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원리에는 전혀 신비할 것이 없다. 발생 과정 자체도 그렇거니와, 발생을 통제하는 유전자들이 유전자풀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되는 진화적 역사도 그렇다. 복잡성은 기나긴 진화의 시간을 거치며 서서히 누적되어간다. 각 단계는 바로 앞 단계보다 아주 조금 다를 뿐이고, 기존의 국지적 규칙에 작고 미묘한 변화가 발생해 생겨난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차원에서 국지적 규칙을 준수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작은 개체(세포, 단백질 분자, 막)가 충분히 많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는 극적일 수 있다. 그런 국지적 개체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서 유전자의 생존 여부가 결정 된다면, 그로써 성공적인 유전자들의 자연선택(그리고 그로 인한 성공적인 산물의 등장)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 이 책의 절정은 마지막 3문단. 감동적인 마무리다.
p.563 우리가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가 다소간의 차이를 두고 우리와 닮은 동물들로 구성된 풍성한 생태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우리와 덜 닮았지만 우리에게 모든 영양소를 공급하는 식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 우리의 먼 선조를 닮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주어진 시간을 다하고 돌아갈 때 우리를 부패시킬 박테리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 역시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다윈은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커다란 문제인지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시대를 앞서갔을 뿐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깨닫는 면에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다윈은 또한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상호 의존한다는 것, 그 정교한 관계망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면에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어떻게 해서 우리는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런 복잡성, 그런 우아함,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에 둘러싸여 존재하게 되었을까?
 답은 이렇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에 관해 인식할 수 있는 이상, 그리고 그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상, 어차피 다른 식으로는 될 수 없었다. 우주론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우리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별이 없는 우주도 있을지 모른다. 그 우주의 물리법칙들과 물리상수들은 원시 수소를 응집시켜 별로 만들지 않고 고르게 퍼뜨려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우주는 누구에게도 관찰될 수 없다. 별이 없으면 무언가를 관찰하는 개체가 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공급해줄 별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별은 화학원소들의 대부분을 제조해내는 용광로와 같으며, 풍요로운 화학이 없으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여러 물리법칙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매번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이다.
 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눈길을 돌리는 어디에나 초록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활짝 피어 번성하는 계통수의 한 가운데에 작은 가지로 자리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먹고, 자라고, 썩고, 헤엄치고, 걷고, 날고, 땅을 파고, 몰래 다가가고, 추격하고, 도망치고, 앞질러가고, 앞질러 속이는 무수한 종들에게 우리가 둘러싸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보다 적어도 열 배는 많은 초록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움직일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포식자와 먹잇감, 기생생물과 숙주가 끝없이 증강하는 무기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다윈이 이야기한 '자연의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없다면, 무언가를 바라보는 능력을 지닌 신경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것은 마을 유일의 게임, 지상 최대의 쇼다.

'읽고난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 왕자  (10) 2010.06.10
오래된 연장통, 전중환  (2) 2010.05.15
비유는 조심조심  (3) 2009.03.14
다윈 - '인간의 유래' 중에서..  (3) 2009.03.01
왓치맨  (6) 2009.02.13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