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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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바르셀로나 지하철 상츠역 플랫폼. 꼬질꼬질한 동양남자가 지하철에 오르는데 왠 젊은놈이 3초간 앞길을 막다가 도로 내린다. 타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문에 낄뻔하다 간신히 지하철에 탄 동양인은 오른쪽 건빵바지가 허전함을 느낀다. 0.5초간 패닉 상태를 겪은 그는 출발하는 지하철 문 너머로 의기양양한 3인조 소매치기단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여행 152일 째

바르셀로나에서 털렸습니다.

전날 "travel(여행) 이라는단어의 어원은 '고통'을 뜻하는 travail과 같다"는 트윗을 보고 과연 그러하다고 공감하고 났더니 바로 일이 터졌네요. 

과연 바르셀로나는 명불허전! 눈뜨고도 코 베어 간다더니 두눈 똑똑히 뜨고 당했습니다.

우선 든 생각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지갑에 들은 것 중에 여행이 중단될 만큼 치명적인 것이 있던가?" 였습니다. 문제는 "저 새끼들을 어떻게 잡지?" 보다 먼저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생각의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되든 안되든 지하철 긴급정지 빨간레버를 당기는 거였는데 말이죠.

바로 내린 다음 반대방향으로 잡아타고 달렸으나 복잡한 버스 터미널에서 5분 전에 털어간 놈들 찾기란 불가능하더군요.

평소 상상훈련 했던 대로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웹으로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영어 번역 서비스가 있다는 에스파냐광장 경찰서에 가서 레포트를 쓰고 왔습니다. 마침 어제 500유로짜리 여행자 수표를 현금화한 다음 270유로를 지갑에 들고 있었는데 놈들, 때도 잘 맞췄지 뭡니까.

불행 중 다행은 여권과 비상금은 숙소 락커에 잠궈두고 다녔다는 것. 여행은 계속되겠지만 잃어버린 현금과 학생증이 아쉽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또 그런 상황에 처해도 안 털릴 자신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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